전자책 원고 샘플을 화면으로만 계속 보다가 어제는 결국 몇 장 뽑아봤음. 별일 아닌데 이게 은근 고민이었지. 집 프린터 잉크도 아깝고, 요즘 누가 종이로 보나 싶고, 그냥 태블릿으로 확대해서 보면 되잖아 싶었는데 계속 같은 줄에서 눈이 걸리더라.
특히 미리보기 화면에서는 괜찮아 보였던 문단이 종이로 보면 갑자기 숨 막히는 느낌이 있음. 줄간격도 그렇고 문단 사이도 그렇고. 내가 쓴 글인데 괜히 남의 글 보는 기분이 나서 좀 민망함. 생각보다 크네.
망설인 이유는 또 있음. 종이로 보면 손댈 게 너무 많이 보일까 봐. 요즘 부업도 정리하는 중이라 괜히 원고까지 다시 벌리면 밤에 잠깐 하려던 게 새벽까지 가잖아. 오후에 외주 디자인 조금 하고, 저녁 먹고 원고 본다는 계획이 늘 말은 쉬움. 실제로는 커피 한 잔 내려놓고 폰 보다가 시간 다 감.
그래도 어제는 그냥 8쪽만 뽑았음. 전체 다 뽑으면 기분만 무거워질 것 같아서. 본문 앞부분, 중간에 설명 많은 부분, 끝에 판매 페이지에 걸릴 만한 문단 이렇게만 골랐음 (내 기준으로 제일 불안한 데). 그리고 빨간펜 말고 회색 볼펜으로 봤다. 빨간펜 쓰면 너무 고쳐야 할 원고처럼 보여서 기분이 세짐.
해보니까 화면에서 고치던 거랑 손이 가는 데가 다르긴 함. 오타보다 호흡이 먼저 보임. 한 문장이 괜히 길다거나, 같은 말을 두 번 하고 있다거나, 제목이 너무 얌전해서 첫 장에서 힘이 빠진다거나. 전자책은 어차피 화면으로 읽는 건데도 종이로 잠깐 보는 게 쓸모 없진 않더라.
다만 전부 종이로 볼 필요는 없는 듯. 나처럼 괜히 완성 직전에 미루는 사람은 딱 몇 장만 뽑는 게 낫겠음. 너무 많이 보면 다시 처음부터 갈아엎고 싶어짐. 오늘 밤에는 수정한 샘플을 다시 폰으로만 볼 생각임. 종이랑 폰이랑 둘 다 통과하면 그때는 그냥 놔둬야지. 자꾸 만지면 원고가 좋아지는 건지 겁이 늘어나는 건지 모르겠음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