퇴근하고 집에서 라떼 만들어 먹는 거에 꽂혀서, 언젠가 홈카페 쪽으로 작은 부업 해볼 수 있나 싶었음. 막 거창한 건 아니고 드립백이나 컵홀더 세트 같은 거 소량으로 팔아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. 매장 일 끝나고 행사 스태프 뛰면 손님들 뭐 들고 다니는지도 자꾸 보이니까 괜히 눈이 감.
문제는 내가 너무 빨리 신났다는 거임.
처음엔 컵이랑 스티커만 알아보다가, 어떤 업체에서 무지 컵이랑 뚜껑 묶음으로 싸게 올라온 걸 봤음. 가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개당으로 치면 한 100원대 후반인가 200원 조금 넘었나 그랬던 듯. 샘플 주문도 가능했는데 배송비 붙고 소량은 단가가 별로라서, 그냥 작은 박스 한 번에 주문하면 되겠지 싶었음.
그때는 내가 똑똑한 줄 알았음. 어차피 컵이 컵이지 뭐... 이런 생각.
배송 온 날이 쉬는 날 전날이라 밤에 택배 뜯어봤는데, 컵 자체가 막 못 쓸 정도는 아니었음. 근데 내가 생각한 두께가 아니었고, 뚜껑이 생각보다 헐거웠음. 물 넣고 살짝 흔들어보니까 뚜껑 옆으로 찔끔 새는 느낌이 있음. 뜨거운 음료는 더 불안해서 바로 식음.
그냥 집에서 쓰면 되지 했는데, 집에서 일회용 컵을 그렇게 많이 쓸 일도 없잖아. 달서구 자취방 한쪽에 박스가 계속 쌓여 있으니까 볼 때마다 약간 짜증남. 홈카페 감성은 무슨, 방 구석 물류창고 됨 ㅠㅠ
스티커도 같이 맞췄는데 이게 또 애매했음. 화면으로 볼 땐 깔끔했는데 실제로 붙여보니까 색이 컵이랑 안 맞고, 물방울 묻으니까 가장자리부터 살짝 뜨더라. 업체 잘못이라고 하기에도 내가 재질 확인을 제대로 안 했으니 할 말 없음. 문의 넣어볼까 하다가 내가 샘플도 안 보고 산 거라 그냥 접었음.
진짜 웃긴 건 그 다음 주에 근처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하면서 컵을 유심히 봤는데, 내가 산 거랑 느낌이 완전 달랐음. 뚜껑 맞물리는 소리부터 다르고 손에 잡히는 단단함도 다름. 그제야 아 샘플값 몇천 원 아끼려다가 박스값을 버렸구나 싶었음.
중고로 팔까도 생각했는데 컵류는 위생 때문에 사는 사람도 찝찝할 거 같고, 나도 설명하기 애매해서 그냥 행사 같이 하는 지인들한테 일부 나눠줬음. 그래도 남음. 엄마한테도 가져가라 했는데 “이걸 어디다 쓰노” 한 마디 듣고 끝남.
부업 알아볼 때 영상이나 글 보면 다들 시작이 쉬워 보이잖아. 상세페이지 만들고 소량 입고하고 테스트하고, 말은 쉬운데 내 돈 들어가는 순간 판단이 흐려짐. 특히 퇴직 생각하면서 뭔가 빨리 만들어놔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있었던 거 같음.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라 빨리 버튼 누른 거지.
지금은 뭐든 샘플 먼저 봄. 배송비 붙어도 그냥 냄. 색, 냄새, 두께, 포장 상태 이런 건 사진으로 진짜 모르겠음. 그리고 집에 보관할 공간도 돈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음. 박스 하나가 별거 아닌데 매일 눈에 보이면 계속 실패 알림처럼 떠 있음.
아직 컵 조금 남아 있는데 요즘은 아이스커피 연습할 때나 씀. 그나마 라떼아트 망하면 바로 버릴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려고 함. 근데 다음에 또 뭔가 주문할 때 내가 안 급한 척하면서 급하게 결제할까 봐 그게 좀 무섭긴 하네요...